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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feat. 블로그기자단

인천 서구의 위인, 양혜공 한백륜에 대해 알아봅시다.




인천 서구의 위인, 양혜공 한백륜에 대해 알아봅시다.



한백륜(韓伯倫)이란 분을 아시는지요?

개인적으론 이분은 바로 저의 청주한(韓)가의 중시조인 양혜공으로 저는 33세손이기도 하지요.

인천 서구의 마전동을 업무차 지나치다 '한백륜묘'라는 푯말을 보고

꼭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곳은 현재 택지개발 관계로 집과 공장들이 사라지고 있어 뭔가 휑한 기분을 갖게 만들더군요.

그래도 한백륜의 묘역은 다은 어떤 곳과 달리 크기도 하지만

관리가 잘되고 있으니 더욱 흡족하게 합니다.


그럼 청천부원군 한백륜(1427~1474)이란 분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지요.









 


조선의 문신으로 시호가 양혜공(襄惠公)으로 관찰사 창(昌)의 아들이며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과는 5촌 당숙간이다.  공조정랑으로 있을시 그의 딸이 예종의 왕비가 되었는데 바로 안순왕후(安順王后)로 왕의 장인으로서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에 봉해지고 성종때 영의정이 되어 정인지, 한명회, 신숙주등과 함께 국정에 참여하며 크게 기여 하였으나 48세의 이른 나이로 졸(卒)하였다.


공은 천성이 온후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침착하고 과묵하였고 겸손하게 행동하였다고 한다.

외척이면서 재상이 되었어도  교만함이 없었으며 사는 집도 아주 좁고 누추할 정도로 청백리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고 한다. 그가 죽자 성종은 3일간 아침 조회를 중단하고 애도를 전했다고 한다. 


'정승이 되어서는 외척(外戚)으로서 번영한 것을 두렵게 여겨 여러 번 사직하고 물러갔으며, 사는 집이 좁으므로 친구가 고쳐 지으라고 권하면 웃으며 말하기를, "이 집은 선인(先人)에게서 받았으며, 비바람을 막을 만한데, 어찌 고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성종실록>






 

 

 





왕실의 능과 같이 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능안'에 자리한 청천부원군 한백륜 묘역은

마전동 능안 산 120-4 번지에 위치해 있는데요.

들판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오늘따라 푸르고 맑은 하늘이 멋진 조망을 그려주니

명당임을 다시금 알게 해 줍니다.


묘역 아래에는 '능안재'라는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있고

묘역에는 일반 묘보다 규모가 큰 봉분과 고비,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단부에는 아들인 호조참판 청릉군환의 비와 후손의 비가 자리해 있습니다.




 

 





1981년에 한백륜 묘역을 단장하면서 상석 아래에서 백자묘지명이 출토되어,

2004년에 인천시립박물관에 기탁, 보관∙전시되고 있습니다.

묘지명에는 '유명조선추중정난 익대순성 명량경제 좌리공신

대광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영 경연사 청천부원군 양혜공 한공묘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곳은 시 기념물 제54호로 지정(2004), 관리 되고 있습니다.




 

 




묘역 주변을 한 바퀴 돌고 큰 절을 올린 후 그리고 나오면서 마주치는 꽃들과

붉고 검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려 있으니 저절로 사진으로 담게 됩니다.


인천 서구의 위인이자 개인적으로

저희 중시조이신 한백륜 선생의 묘역을 찾게된 하루가 더욱 뜻깊게 다가오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