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역사 인물탐방, 심즙 신도비를 찾아서
신도비(神道碑)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가요?
바로 정 2품의 고위직(지금의 장, 차관급)이상을 지낸 분으로 아주 큰 위업과 공훈을 세웠거나 도덕과 학문에 뛰어난 자의 묘 앞에 세우는 비석을 말하고 있지요. 신도비가 세워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귀감이 되었다는 사후의 증표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덴 우리 인천 서구에도 그와 같은 신도비가 있다고 하여 제가 찾아 갔는데요.
오늘 제가 찾은 분은 심즙(혹은 심집)선생입니다.
계양에서 공촌동으로 내려가는 고개로 경명현으로 알려진
징메이고개의 군부대 아래쪽에 위치한 심즙신도비 표지판을 보고 200m 정도를 들어가면 만나는
심즙신도비는 넓은 청송 심씨(靑松沈氏)의 묘역을 만나는 데
그곳에는 총 4기의 신도비가 눈에 띈다. 찾아 간 날이 아주 맑은 가을 날씨라
신도비에서 바라보는 묘역이 아주 맑고 잘 정돈되어 있었답니다.
좌측으로 세 번째에 위치한 신도비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도비입니다.
심즙(沈諿 1569(선조 2)∼1644(인조 22)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입니다.
그분의 일생을 좀 더 알아볼까요?
어떤 행적을 담아서 신도비가 세워졌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인조반정으로 재 등용되어 형조판서가 되었습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 인조가 공주로 몽진(蒙塵)할 때 호종(扈從)하여 호종공신이 되었으며
병자호란 때는 대신(大臣)을 인질로 보내라는 요구에 대신으로 신변을 가장하고
청나라 진영에 가서 화의를 교섭했으나 신분이 탄로나 실패했다고하네요.
훗날 예조판서에까지 임명되었지만 아들의 모반 사건에 연좌되어
직위도 환수당하고 유배되자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으나
숙종 때 송시열(宋時烈) 등에 의해 신원(伸寃: 억울한 죄가 바르게)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신도비는 원래 시흥에 있었으니 이곳의 묘역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거유(巨儒)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짓고,
홍봉조(洪鳳祚:1680∼1760)가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兪拓基)가 비에 새기었습니다.
신도비를 담고 좌우의 문인석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망주석들도 있습니다.
무릇꽃들이 묘역 주변을 알알히 품고 있는 모습 역시 세월을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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