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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16탄, 백석동 개량 부엌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16탄, 백석동 개량 부엌


사진으로 보는 시정(市政)이라는 옛날 사진첩을 뒤지다가 이 사진을 발견했다. 1973년도 인천시의 한 해 각종 시정 사진 중의 한 장인데 사진 아래 설명에 "백석동 개량된 부엌"이라고 쓰여 있다. 이 무렵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초기여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마을가꾸기 등 재건운동이 벌어지던 때여서 그 영향으로 부엌 개량 사업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더구나 당시 백석동이라면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벽촌이나 다름없는 지역이어서 시범적으로 이런 개량 사업이 행해졌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보면서 적어도 개량이라고 말한다면 오늘날처럼 주부가 허리를 펴고 주방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 고작 부뚜막에 타일을 붙이고 부엌 벽에 새롭게 회칠을 한 것만으로도 무슨 대단히 혁신적인 시정을 펼친 것처럼 사진을 찍어 홍보를 했던 것이다. 역으로 1973년이면 지금으로부터 꼭 39년 전인데 그때의 우리네 삶이, 우리네 부엌 현실이 그렇게도 낙후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 안방 밖에 별도로 딸려 있는 재래 부엌은, 돌이켜보면 늘 어두컴컴하고 또 연료로 솔가지나 장작을 때는 구조였기 때문에 온통 시커먼 그을음투성이였다. 부뚜막도 대체로 황토를 바른 채 그대로인 집들이 많았고, 겉에 시멘트를 입힌 것이 좀 나은 집 부뚜막이었다. 그런 부엌 형편을 일단 환하고 매끄럽게 바꾸어 놓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개량'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백석동 어느 댁 주부였는지는 모르나 방금 식구들 저녁쌀을 안치려는지 플라스틱 바가지로 밥물을 잡고 있다. 주부의 복장이 역시 새마을운동의 여파였을 터인데 제복처럼 단출하고 간편한 복장에 머리에는 세수수건이 아닌 스카프를 쓰고 있다. 옛날 할머니, 어머니들은 부엌에 들어가실 때는 철칙처럼 머리에 수건을 쓰셨다.


무쇠 가마솥과 양은솥이 걸린 이런 여염집 부엌 풍경은 이제 어디서도 볼 수가 없다. 주부 등 뒤로 보이는 석유곤로도 지금은 다시 보기 어렵다. 아무래도 이 댁 주 연료가 구공탄이었을 성싶은데 부뚜막 어디에도 공기조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왼쪽 끝에는 장작을 땔 수 있는 작은 화구(火口)는 그대로 있다.


서구 백석동 개량 부엌 사진 한 장이 잊고 있었던 40년 세월 전, 우리네 삶의 모습을 증언이라도 하듯 생생하다.


김윤식/시인

자료 : Green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