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20탄, 1930년대 중반의 서곶면사무소
행정적인 의미에서 인천에 서구가 탄생한 것은 1940년 인천부(仁川府) 제 2차 부역 확장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구한국을 병탐한 일제는 1914년 4월 1일 서울, 인천, 군산, 목포, 대구, 부산 등 12개 지역에 부제(府制)를 실시, 지방행정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데 인천의 경우는 주로 개항장과 그 주변 지역만을 인천부 관할 지역으로 남기고, 그 외의 지역은 부평군 전체와 함께 묶어 부천군(富川郡)을 신설하여 관할케 한다. 부천군은 부평에서 '부'자를 인천에서 '천'을 따 명명한 것이다.
인천은 당시 부내면(府內面), 다소면, 구읍면, 서면, 남촌면, 조동면, 신현면, 전반면, 황등천면, 주안면, 영종면, 덕적면 등 13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이 조치로 인해 부내면과 다소면 일부 지역만 남게 된다. 이후 인천부는 도시 팽창과 일제의 대륙병참기 지화 정책에 의해 몇 차례 확장되는데, 특히 1936년 10월 1일 인천부역 개편 때에는 부천군 문학면의 일부와 다주면이 편입되고, 1940년 4월 1일 제 2차 부역 확대 때에는 다시 문학면의 일부와 서곶면 그리고 부내면(府內面)이 새롭게 인천부에 편입되게 된다. 서곶면사무소는 당시 지명으로는 정상정(井上訂), 즉 지금의 연희동 247-2번지 연희진(連喜鎭) 자리에 자리 잡는다.
그러면서 일제는 인천부에 새로 편입된 지역의 행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같은 날 출장소(出張所)라는 행정 기구를 두는데, 이때 설치된 출장소가 부평, 남동, 그리고 서곶출장소였다. 문학출장소는 이보다 늦은 7월 10일에 설치된다.
사진은 이 지역 출신 소설가 이원규 씨가 보관하고 있는 것인데, 촬영 연대가 1930년대 중반 무렵이라고 한다. 아주 흐릿한 대로 현관 오른쪽에 내려붙인 나무 명판에도 '서곶면사무소'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러니까 1940년 이전으로 아직 '서곶출장소'는 아닌 것이다. 사진 속 인물들의 두발이나 의복 모습으로 보아 일제시대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런 기념 촬영 비슷한 사진을 남겼는지는 이 씨 자신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사진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바로 이원규 씨의 선친인 고 이훈익(李薰益) 선생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선생은 서곶 토박이로 광복 후에도 인천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서곶출장소장을 끝으로 정년을 맞은 분이다. 후일 인천향토사 연구에 매진하여 「인천충효록」,「인천지지(地誌)」,「서구향토지」,「인천의 지명유래」, 「인천의 성씨인물고」, 「인천금석비명집」, 「근세인천지방의 전란사」 같은 저서를 남겼다.
출처 : Green 서구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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