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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서구 향토역사순례 11탄, 박동선 신도비를 찾아서

 

인천시 서구 향토역사순례 11탄, 박동선 신도비를 찾아서

 

인천시기념물 제59호 반남 박씨 대종중 묘역은 서구 대곡동 151-1번지에 위치해있다.

 

이곳에는 금천부원군∙영의정을 추증 받은 정헌공 서포 박동선과 금주군∙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된 충숙공 하석 박정의 신도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신도비는 정2품 이상의 관직이나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 또는 대학자들에게 왕이나 조정의 심의에 의해 내려지는 영광스러운 것으로, 두 기의 신도비가 있는 이곳이 시 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최근의 일(2010. 4. 27)로 두 인물은 조선 중기 문신들로서 부자(父子) 관계이다.

 

(박동선 신도비)

 

이 분들의 행적을 간략히 소개하면 선영 좌측 신도비의 박동선(1562~1640)의 자는 자수, 호는 서포이다.


선조 22년(1589년)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 출사하여 많은 요직을 두루 거쳤고 관직에 있는 동안 정유재란,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공신반열에 올라 형조판서, 좌참찬, 우참찬을 지냈다. 사후에 금천부원군,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헌이며 저서로‘서포기문(西浦記聞)’을 남겼다.


묘역 우측 신도비는 박동선의 아들인 박정(1596~1632)의 것으로 공의 자는 대관,호는 하석이다.

 

공은 광해군 11년에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해 승문원 부정자를 시작으로 많은 관직을 두루 거치며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어 금주군에 봉해지고 대사헌, 이조참판, 부제학 등을 역임했으며 사후에 충숙이란 시호를 받았는데 특히 공의 아들은 조선후기 소론계의 거두이며 학문과 사상이 당대 최고인 실학파 학자로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한 서계 박세당이다.

 

 

(박정 신도비)

 

묘역이 자리해 있는 곳은 대곡동 두밀부락으로 검단초등학교 앞에서‘대곡동지석묘’방향으로 들어가면 청룡부리 앞에‘반남 박씨 선조묘역’이란 비석과 안내판이 도로 한편에 세워져있다. 이 곳의 지명을“김포지명유래집”에는‘사방이막힌마을’이란뜻의‘두모곡’,‘ 두곡’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신도비에도 이곳이 과거 김포 마산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명에서 보이듯이 이곳은 과거 수리시설이 없을 때에도 물이풍부해 농사가 잘되고 인심이 후덕하여 한때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이 되기도 했으며 마을의 소지명에도 식수를 제공하던‘찬우물’,‘ 청룡부리물(박두물, 내물)’,‘ 한메약수터’등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마을 중앙에는 500년 동안마을을 지켜오며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시보호수 은행나무가 오늘도 묵묵히 서 있는데 이곳 두밀부락은 반남 박씨의 집성촌으로 500년 전, 처음 세거를 시작한 병문의 고비(古碑)도 자리해 있다.

 

마을의 중심지역에 자리한 묘역이 있는 산을‘분틀메’라고 부르는데 지명유래집의‘빌터뫼’는‘빌다’라는 의미와 안암산(계양산) 자리를 빼앗겨 현재의 자리에 눌러앉게 된 것이 분하다 하여‘분통메’라 부르던 것이‘분틀메’를 변했다는 옛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묘역이 자리한 이곳의 동편으로 한메가 자리하고 좌우로 안산, 청룡부리가 둘러쳐져 있어 아늑한 형국이며, 분틀메에서 바라보이는 산은 이 마을에서는 ‘칠봉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듯 대곡동 두밀 마을에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태어났고 특히 정헌공 박동선은 인천과 부평의 부사도 지내 향토역사에 중요한 역할도 했다. 또한 인근에는‘지석묘’와‘밀양당씨 정렬비’도 살펴볼 수 있어 향토역사 교육의 장으로 손색이 없어 자랑스런 고장의 선조들을 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기에 소개해 본다.

 


박한준(인천서구문화원장)
자료 : Green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