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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7탄, 잠령공양탑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7탄, 잠령공양탑


잠령공양탑(蠶靈供養塔)은 인간에 의해 명을 다하지 못한 누에의 영혼을 달래고, 누에농사를 잘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기 위해 세워졌지만, 일제 하에서 양잠업 농가들이 기금을 내서 반 자율적으로 세워졌으며, 각 도마다 설치되었다.


잠업은 일제강점기 쌀, 면화 등과 함께 수탈의 대상이었다. 군비 마련을 위한 일제의 수출품목으로 급격한 증산 장려가 이루어져 1925년에서 1938년까지 고치 100만 석 증산 계획이 수립되었다.


1926년에 세워진 이 공양탑은 서구 공촌동 길가에 있던 것을 인천광역시립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비석의 전면과 후면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蠶靈供養塔 皐水 大正十五年十一月建立之 設立發起人總代 農學博士 梅谷與七郞"



(사진 : 시립박물관 우현마당에 서 있는 잠령공양탑)



이상은 2010년 10월 인천광역시역사자료관에서 펴낸 인천역사문화총서 권61'인천상식문답' 제43번 문항의 보충 설명 자료 전문이다. 화강암으로 된 이 탑은 밑면 가로 45cm, 세로 34cm, 높이 300cm인데 직사각형의 긴 기둥 형태로 꼭대기는 뿔처럼 뾰족하게 되어 있는 형상이다.


2002년 3월 5일에 기증된 이 유물은 "가정동의 한 대중음식점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는데 음식점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靈'자가 귀신을 뜻한다며 기분 나빠하자 음식점 주인이 박물관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 인천시립박물관 김래영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기부자에 의하면 애초 이 탑이 있던 곳은 석남1동 193번지이며 1986년에 음식점 주인이 인수했다는 것이다.


인간을 위해 죽은 누에들을 기리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일제의 강압으로 고치를 거두던 우리 조선인 농민들은 그들로부터 실제 누에만도 못한 대접을 받은 사실을 생각하면 '누에에게만 따듯한 품성을 보인' 일제의 본말(本末)이 전도된 교활한 생색이 참으로 괘씸하다. 아무튼 당시 일제가 농업 증산 계획을 세우면서 공촌동 사거리 일대를 양잠 지역으로 지정했었다고 하는데 '인천시사'나 '서구사' 어디에도 그런 언급은 없고 향토사가고 이훈익(李薰益) 선생도 이에 대한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김윤식/시인

자료 : Green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