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23탄, ‘신현동 회화(槐花)나무를 찾아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서구에서 한적했던 시절, 마을의 수호목으로 마을 주민들의 정신적 의지처요, 한여름 정자목으로 더위를 피해 나무그늘에 모여 정답을 나누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며 서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문화의 터전 역할을 해왔던 서구의 보호수들 중 그 첫 번째로 신현동에 있는 회화나무를 소개해본다. 수령이 500여 년이 넘은 이곳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15호로 지정되었는데 높이가 22m, 둘레 5.3m로 서구 신현동 137-7번지에 위치해 있다.
어느 고장이나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있고 그 나무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보호수로 지정되기도 한다. 이곳의 회화나무도 여러 옛이야기를 갖고 있다. 오랜 옛날 인근에 있는 도당산의 회화나무가 큰 홍수로 인해 마을로 떠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심어졌다고 하는 설도 있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바닷물에 떠내려와 심어졌다고도 하는데 현재에도 남아 있는 이곳의 옛 지명에 '앞방죽'이나 '너머방죽'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마을 원로의 증언에는 과거에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작은 배들은 이 회화나무에 묶어 정박했었다고 한다. 이는 인근 원창동의 포리(浦里)에 1884년(고종21) 전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양곡(세곡미)을 보관하던 참고였던 전조창(轉漕倉)이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바닷가 인근에서 신현동까지 수로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겠다.
이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도당산(큰당산)에서 동제(도당제)를 올리고, 이어 회화나무(작은당)에 제단을 마련해 제를 드려 마을의 안녕을 빌고 길흉화복을 점쳐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했던 전래제의가 1950년 이전까지 전해왔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해 근 30여 년 간 마을 공동제를 지내지 못하고 몇몇 뜻있는 마을 분들에 의해 개인적으로 회화나무와도 당산에서 제사를 드리다가 마을에 뜻하지 않은 재난.사고가 있어 1980년경부터는 도당산에 제단을 마련하고 '산제사터'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2년에 한 번 산치성(산제사)을 정성스레 올리고 매년 마을의 수호목인 회화나무에서 이 마을 경로당 완공일(음 5월 28일)에 맞추어 원로들이 마을제를 올리고 있다.
마을에서는 회화나무의 꽃이 필 때 윗부분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밑부분으로 내려오면 풍년이 들고, 그 반대 현상으로 피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전하여 오기도 한다. 회화나무의 '회'자는 한자로 '괴(槐:홰나무 괴)'라 쓰지만 중국 발음의 영향으로 '회화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고고한 선비정신을 상징한다고 여겨 선비나 양반이 사는 마을이나 집에 많이 심어졌고, 이사를 갈 때는 그 종자를 챙겨서 새로 심거나 나무를 옮겨 심을 정도였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되어 있고 병충해 및 공해에 강하며 이 나무의 꽃은 8월에 피고 약재(고혈압, 지혈제)로 사용되기도 하고 열매는 원추형(염주 모양)으로 10월에 결실을 맺으며 강장제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이렇듯 생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내력의 신현동 회화나무가 고장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보호수로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마을의 수호목으로 잘 보존되기를 바라며 유난히 일찍 찾아온 더위에 관심 있는 지역민들이 이곳을 찾아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 보는 삶의 여유를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서구문화원 원장 박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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