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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18탄, 서곶지구 도로확장공사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18탄, 서곶지구 도로확장공사


1965년 10월 4일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으니 이 '서곶지구 도로확장공사' 사진도 찍은 지 근 반세기에 이른다. 이 지역 출신인 소설가 이원규 씨가 사진을 보고는 대뜸 "싱아고개, 곧 승학현"이라고 말한다. "가정동과 심곡동 사이의 구 305번 지방도로서 남 서곶과 북 서곶의 경계"라고 일러준다.





싱아고개나 승학션은 같은 이름으로, '인천시사'에 보면 원 산 이름은 축곶산으로, 나무가 울창하여 백로(학)이 서식했다고 한다. 학들이 날아 오르는 모습을 보고 오를 승(昇) 자를 써, 승학현(昇鶴峴)이라 불렀는데 그것이 민간에서 음이 변해 싱아고개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그때는 이 정도였구나.'하는 심정이다. 산언덕을 깎아 도로를 넓히는데 아무리 가난하고 낙후되었다고 해도 중장비라고 트럭 한 대가 없이 삽이나 괭이, 삼태기, 구루마만 가진 거의 인력에 의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기록이 없어 이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이 하루얼마의 노임을 받았는지는 모르나 놀라운 것은 사진 속에 보이는 삼 십여 명의 노역자 중에 절반 가까이가 여성 인력이라는 점이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머리에는 흰 수건을 쓰고 삼태기를 이고 안고, 삽질을 하며 남자들과 똑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월 초하면 아직 한낮의 햇살은 목덜미에 따갑고 필경 여인네들의 얼굴을 검게 그을릴 것이 뻔한데….


오늘날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힘든 노역의 실상을 보면서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어느 구석구석도 전부 이렇게 선조들의 노고와 피땀의 손길이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에 와서 한꺼번에 빌딩이 솟고, 고속도로가 놓이고, 안락하게 승용차가 구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쌓여 오솔길이 나고 이윽고 넓은 도로가 열리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나 반세기 전의 빛바랜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제 이 길 이 황토 흙길이 아닌 포장도로가 되었고, 또 서구에서 매년 차 없는 거리로 선포해 서구민과 인천시민들에게 휴식과 사색의 공간으로 제공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 속 S자형으로 꼬부라져 올라가는 싱아고개 길의 모양이 당시 우리 살림살이의 험난과 질곡을 상징하는 듯해 코허리가 찡해 온다.


김윤식/시인

자료 : Green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