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동 썸네일형 리스트형 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26탄 ‘시천동 보호수의 수난’ 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26탄 ‘시천동 보호수의 수난’ 시천동은 현재 검암동에 속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부평군 모월곶면, 한때는 황어면(黃漁面)에도 속하기도 했다. 또한 시천리는 시시내라고도 불렸는데, 그 유래는 계양산 북쪽의 물줄기가 시작한 곳이라 하기도 하고, 원래 이 지역이 깊은 골짜기 안의 갯골이었으나 보와 둑을 쌓아 논을 만든 갯골에서 시내(川)가 비로소 시작된 곳이라 해서 불렸다고도 전한다. 예로부터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되고 인심이 좋은 시천동은 시시내, 점말, 안골, 윗말(본마을) 등 자연촌이 모여 생긴 마을이다. 본마을의 가장 끝자락에 갯골이 있었고, 점말에는 포구가 있어 옹기를 구어 배로 나르고 팔던 옹기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밖에 마을 앞에는 꽃뫼라 불리던 화산..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