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인천 서구 풍경 39탄! <인천교 확장공사>
인천교(仁川橋)에 대해서는 이 난(欄)을 시작하면서 첫 이야기로 했는데 다소 소략(疏略)한 감이 있었다. 워낙 지면이 좁아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세기』에 나오는 구절 몇 줄만 옮기다시피 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 다리와 관련한 인천 서구 인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인천교 다리 건설에는 서구 백석동 출신인 고 심덕기(沈德基 1911~1992) 선생의 역할이 컸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심 선생은 1952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민선 인천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지역 발전을 위해 공헌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심 선생에 관해서는 이 보인다. 경성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금촌 금융조합에 근무하면서 일제의 수탈 만행으로부터 민족 자본을 지키기 위하여 고심, 노력 했고, 1952년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자치 선거에서 초대 인천시 시의원에 당선된 뒤, 1956년 제2대에도 연거푸 재선되었으며 제2대에 들어 와서는 인천시의회 의장에 피선되어 농업과 공업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정책을 펴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 인천의 동서지역 간 균형 발전을 꾀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까 인천교 건설은 심덕기 선생이 시의회 의장을 지내며 다소간 영향력을 발휘했었을 것이라는 점을 이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을 자기 출신 지역을 위한 단순한 선심 사업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장 주민들 통행 불편의 해소라는 이득도 있었지만, 그보다 거시적 안목으로 인천 전역의 균형 발전을 내다본, 미래적이고 건설적인 사업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초 1957년 2월에 착공하여 1958년 1월 17일에 준공한 인천교는 길이 210m, 폭 12m였다. 그러다가 1964년부터 이 일대에 공단이 들어서면서 통행 수요가 폭증해 1971년에 공사를 시작해 1973년에 폭을 기존의 두 배 반이나 되는 30m로 넓혔다. 사진은 바로 그 확장 공사 장면이다. 새로운 교각을 세우는 모양인데 공사 도구들이 웃음을 짓게 한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잇댄 나무와 와이어를 얽어 설치한 크레인이나 파이프가 아닌 목재 비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40년 세월의 거리를 느끼게 한다.
심덕기 선생의 혜안과 선견이 서려 있던 인천교는 이런 곡절을 거쳐 1980년대 시세 확장과 공업용지 부족으로 이 일대 48만여 평 바다를 매립하면서 이름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다.
Green서구 제216호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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