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서구 향토역사순례 39탄 <연희동 계명(鷄鳴)공원 이야기>
서구청 인근 연희동(蓮喜洞)에는 도시화 과정에서 조성된 계명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과거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사건 이후 당시 수도의 관문이며 해운 요충지인 인천 연안방어의 목적으로 동구 화수동의 화도진(고종16년, 1879), 훗날의 계양산 중심성(1883)과 더불어 인천 연해방어진으로서 역할을 했었던 설치되어 있었지만, 현재에는 지석만으로 옛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연희진’에 대한 문헌기록은 1941년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서곶방면의 인물지리와 문화유적조사를 실시한 후 보고된 고, 당시 인천시립박물관장인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1911~79)에 의해 편찬된 仁川, 1959)의 안내고적·명승·천연기념물”등에도 수록되어 있고, 1973년 인천시사(仁川市史)에 연희진과 연희포대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근대 개항 이후 이곳에는 서곶면사무소(1914)와 서곶지서, 서곶초등학교가 들어서고(1929) 인천부 서곶출장소(1940)와 서곶지청(1945)이 설치된 후 1988년에 비로소 용되면서 서구청사가 신축되어 이전하고 행정중심에서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계명’이란 지명은 연희동 본말의 북쪽에 있던 작은 구릉이었다. 그 구릉 앞의 논을 과 억 아시아인들의 축제인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의 개·폐회식을 치른 주경기장이 들어서 있다. 경기장 건설공사 시에는 삼국시대의 유물과 유허지가 발굴되기도 해서 이 일대가 자료에 의한 지명 이전부터 사람들의 거주지로서의 역할도 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연희동의 지형은 계양산에서 시작된 구릉지가 바다를 향해 형성된 곳을 용두산(龍頭山, 용의 머리)이라고 하고 본말의 남쪽 편 구릉지를 갈마산(渴馬山)이라고 불러왔다. 마을 지명에서 보이는 용(龍)이나 닭(鷄)은 땅의 메신저로, 말(馬)은 하늘의 메신저로 상징되어 왔는데 연희동의 용두산·계명산·갈마산 역시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하늘에 제를 지내던 지역임을 지명에서 알 수 있다. 특히 공원의 이름을 계명공원이라 붙인 것은 다’,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자연에 천신신앙의 의미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동제를 지냈던 곳임을 추측 할 수 있다.
현재 계명공원 일대는 주택지로 변모해 옛 모습은 사라지고 이곳을 지키던 토착민들도 많이 떠났지만 이곳을 기억하는 일부 원로들은 공원이 들어선 곳에 자리해 있던 엄나무와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참나무 등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이 회상하는 서곶초등학교 시절 엄나무에 대한 추억은 300 여 년 된 나이를 이기지 못한 듯 비스듬히 누워있었던 나무 밑을 지나 학교를 오가던 이야기와 단오날이면 그네를 걸어 마을주민들이 그네를 탔던 이야기, 음력 10월이면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마을제사를 지내던 모습이 기억난다고도 한다. 동제 때는 샛말(간촌)에 있는 당산(큰당산)의 참나무고목을 정하고 본말인 이곳(작은당)에서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3박 4일 동안이나 성대하게 지냈고 인근 동네 주민들도 많이 모였다고 기억한다.
현재는 예전 마을의 내력과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묵묵히 간직한 채 홀로 서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의 고유지명도, 토착민들의 삶의 흔적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워 이제는 볼 수 없는 연희동 수호목과 계명공원 연희진터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Green서구 제215호
인천서구문화원 원장 박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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