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33탄! <가좌농민학교를 방문한 제물포고등학교 생도들>
감회 깊은 사진이다. 이날 이 기념 촬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사진 속 인물들, 뒷줄에 서 계신 두 분 선생님과 오른쪽 맨 끝에 선 선배의 기억 때문이다. 서구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의 그 『인천 서구 그리고 사람들』 사진집에는 1962년이라고 연도가 적혀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필자가 중3이던 시절이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분이 심재갑(沈載甲) 선생님이다. 공민 과목을 가르치셨다. 오늘날로 말하면 일반사회 과목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담임을 맡으신 은사이시다. 선생님은 서구 지역의 대표적인 지성인, 봉사자, 선각자이셨다. 수많은 활동 중에 가좌농민학교를 세워 정식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청소년들을 모아 가르치신 일이 특히 유명하다. 선친이신 고 심운섭(沈雲燮) 선생이 이미 1930년대에 브나로드 운동의 일환으로 자택에 가재울강습소를 열어 문맹퇴치와 계몽운동을 벌이셨는데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으신 것이다.
그 옆에 서신 분이 이경남 선생님으로 영어를 가르치셨다. 키가 훤칠하신 데다가 늘 맵시 있게 양복 정장 차림을 하셨다. 학교 보이스카우트 지도 선생님으로 얼굴이 긴 필자에게‘ 동키’라는 별명을 붙여 놀리시곤 했다. 심재갑 선생님의 검은 재건복 차림과 대조적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 이후 선생님들께서는 검소한 이 복장을 많이 하셨다.
나머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필자의 2년 선배들인 듯하다. 맨 오른쪽 선 이가 제물포고등학교 8회 졸업생인 고창조(高昌朝) 선배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냈었는데 진로를 바꾸어 연세 의대에 진학해 피부과 의사가 되었다. 나머지 앞줄에 앉은 선배들과 뒷줄 두 사람은 전혀 구별할 수가 없다.
교복을 보면 6월초쯤으로 짐작된다. 학교에서는 그때쯤이 되어야 하복으로 갈아입기 때문이다. 뒤에 선 동복(冬服) 선배만 아마 하복 준비가 조금 늦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어느 일요일 이경남 선생님 인솔 하에 심재갑 선생님의 가좌농민학교를 방문해 무슨 봉사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속 서구’가 개인 회고담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서구 풍경이라면 고작 배경의 원적산뿐이다. 이 산이 이토록 민둥산이었었나 싶을 정도로 헐벗은 모습이 눈에 띈다. 흑백사진 한 장을 통해 반세기 전을 회상해 본다.
김윤식 시인
Green 서구 제 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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