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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25탄, ‘원적산 노선버스 개통’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25탄, ‘원적산 노선버스 개통’



   서구 토박이, 특히 가좌동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추억 어린 사진일 듯하다. 이 사진을 보면서 '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 개통식을 떠올릴 것 같다. 원적산을 관통해 버스가 산곡동 방면으로 뚫린 길을 달릴 것이니 과거에 비해, 특히 가좌동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교통 편리가 돌아갈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굳이 가좌동 토박이를 들어 말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 편리가 그다지 획기적인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서구문화원에서 낸 사진집에는 "당시 노면이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이어서 비나 눈이 오면 원적산을 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 가좌동 건지골까지만 운행하는 예가 종종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 그 무렵 동아일보도 "이 도로는 전혀 포장이 안 돼 있고 하수도 시설도 없어 비만 오면 흙탕물이 튀고 차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패어 있으며 날씨가 좋으면 흙먼지가 일어 연도 주민들은 극심한 먼저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이 그것을 그대로 증명하는 듯하다. 흙길에 자갈이 듬성듬성 보이고 가장자리 쪽은 노면이 몹시 울퉁불퉁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통식을 갖은 것을 보면 노선버스 운행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민원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도로포장은 나중이고 우선 버스부터 투입했을 것인데, 그것이 곧 그 시절 우리 인천시 재정이 이렇게 어려웠었음을 생각하게도 한다. 사진은 관련 인물들이 앞면을 화환으로 장식한 골동품 같은 항도 교통 구식 버스 앞에서 막 개통 테이프를 자르려는 순간이다. 이 장면을 보며 거듭 '정말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하는 감회와 함께 쓴웃음을 짓는다.


  아무튼 인물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검은 양복에 와이셔츠 깃을 밖으로 재어 입은 분이 당시 인천시 부시장이었던 노창현 씨이고, 오른쪽 옆에 있는 사람이 송창용 씨이다. 송창용 씨가 항도 교통의 사장이었는지 아니면 버스운송조합장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후일 제물포 버스 사장으로 인천 직할시 버스운송 사업조합 이사장을 지내기는 했었다.


  사진 촬영 날짜는 1972년 7월 10일. 그러나 전에도 지적한 적이 있지만 「인천 시사」는 1972년 10월 2일로 개통 일자를 적고 있다. 약 석 달가량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 사진 속 인물들의 복장을 살펴보면 초복이 가까운 7월 10일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당시 담당자가 혹 10월 7일을 오기했는지... 그렇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림은 이 행사가 무려 41년 전, 추억조차 가물가물한, 우리가 그렇게 못 살던 시절의 일이라는 점이다.





/김윤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