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서구, 검단 광명부락 효자정려를 찾아서
"지극 정성으로 효를 다한 옛 선조들의 효 정신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잊지말아야 할 가르침과
모범적인 교훈으로 대대손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검단 광명 부락은 당하동의 자연부락이었던 족저ㆍ신기ㆍ광명으로 형성되었던 곳이며 광명(光名)은 '매밭'이란 소지명과 함께 형성되어 있던 곳이다. 이곳 광명부락은 대곶면 약암리에서 청송심씨 일가가 300여 년 전에 이주하면서 청송심씨 집성촌이 되었고 매밭에는 안동권씨도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를 해왔다.
김포군 '지명유래집'에 의하면 비가 갠 뒤에 제림산(김북산, 기밋산, 제미산)쪽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아침햇살이 유난히 밝아 '광명'이라 했다고 전해온다.
광명부락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괭맹이', '광메이'로 불려져 고대지명에서 '밝다'라는 뜻으로, 광(光) 또는 명(明)의 글자가 들어간 마음에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다.
이곳 광명부락에서도 매년 시월 초이튿날에 제림산에서 산고사를 지내왔다고 하며 마을의 소지명에 나타나는 지명-솔터구석, 미루터 모퉁이, 청룡부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안동권씨의 집성촌이었던 매밭은 광명부락 앞산이 마치 꿩이 기어가는 형국이어서 마을의 평안을 위해서 꿩을 잡는 매를 지명에 붙였다고 전해지는 오랜 자연부락이었다.
광명부락의 중심인 본동(느티나무말)이라고 부르는 곳에는 구나무로 지정된 360여 년 된 느티나무가 현재에도 자리하고 있다.
1887년(고종24)에 이곳에 세거하던 청송심씨 문중에 효자정려가 내려졌다.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정려(旌閭) 예조입안(禮曺立案)'을 살펴보면 병절교위(秉節校尉 : 종6품하계, 무신의 품계)로 정려를 받은 청송심씨 문중의 심한성(沈漢成 : 1653~1738)의 효자 정려와 정려각이 현존한다. 심한성은 공숙공 심회(沈繪 : 영의정, 청송부원군)의 9세손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문학을 겸비했다고 전한다. 7세 때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어린 나이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 평생의 한으로 여기다가, 성장하여 상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6년 동안을 상제와 같은 마음으로 상중과 같이 베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으면서 날마다 무덤가에 올라 애달프게 울부짖으며 곡을 하였다.
그리고 처음 상을 당했을 때처럼 상례를 똑같이 하고 무덤을 지키기 위하여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기거하며 예법에 따라 한결같이 제례를 행하니, 마을 사람들도 그 행동에 눈물을 흘리고 가엽게 여겼다고 하며 그는 더욱 부모에 대한 예를 갖추고 효성을 다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직접 그 내용을 관아에 올려 예조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1887년(고종24)윤4월 초사흘에 동부승지 윤길구(尹吉求)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재가를 받고 정문(旌門)을 세웠는데, 목재와 목수를 관(官)에서 지원하고 그 집안 자손의 환곡과 제반 잡역을 모두 면제하도록 입안이 내려졌다.
이렇듯 지극 정성으로 효를 다한 옛 선조들의 효정신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가르침과 모범적인 교훈으로 대대손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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