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19탄,
봉익대부(奉翊大夫) 삼사좌윤(三司左尹) 김안정(金安鼎) 묘역을 찾아서
인천광역시 기념물 55호로 예고 후, 제 57호로(2008.12) 지정된 봉익대부 삼사 좌윤 김안정 묘갈은 서구 원당동 120-1번지(서구 원당동 53블럭 9롯트)에 위치한 금릉산(金稜山) 남쪽 자락에 자리해 있다.
원당동 지역이 개발되기 전 이곳은 서쪽으로는 만수산(해발 113m), 동쪽으로는 고산과 묘지산이 있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으나 현재는 아파트 지역으로 바뀌어 묘역을 쉽게 찾기는 어려운 곳이 되었다.
원당동은 자연 부락이었던 원당, 발산, 능곡, 고산후 등의 마을이 합쳐진 법정동으로,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부락에 전해오는 지명들에는 유서 깊고 유래가 담겨있어 선주성 씨들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원당(元堂)이란 '당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던 의미와 신을 모시던 뜻의 지명인 배미산(培美山, 빌뫼산), 한매산(漢梅山, 한뫼산, 한미산, 할미산), 야미산, 옥계봉, 솔모랭이, 서낭당고개, 능곡, 물마덤께, 가마산, 송우산, 숫당고개(실당고개) 등등의 지명에서 '원당'이란 마을 이름이 담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원당동에 세거를 이루고 살았던 성 씨로는 고려 고종조(高宗朝)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내고 판상사에 오르고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들어 풍산백(豊山伯)에 봉해져 관적(본관)을 풍산으로 삼은 김문적(金文迪)의 5대손인 김안정의 후손들이 600여 년 전에 원당 지역에 세거를 시작했고, 발산 지역에는 조선조 명종 무렵부터 양천허씨, 능굴에는 의령남씨, 고산후에는 고성이씨가 집성촌을 이루어왔다.
이곳에는 최근에 구석기부터 신석기 시대까지의 유물이 발굴되어 문화재 보존구역으로 묘역 인근이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묘역이 있는 원당(고산후)인근의 당하동, 불로동, 대곡동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고인돌 및 유물이 발굴되어 과거부터 원당 지역이 고고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사료되지만 아직은 종합적인 정리가 미흡한 상태이다.
이곳에는 김안정이 벼슬에서 물러나 김포 원당리의 가마논 틀 비옥한 곳에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후손들이 세거(世居) 해오고 있으며 공을 풍산김씨 중 시조로 모시고 있다.
김안정의 묘역의 고비는 백색 대리석 계열로, 높이 128cm, 폭 53cm이고 받침인 농대는 너비 48cm, 길이 88cm이며, 농대에는 특이한 문양을 한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는 이 고비는 묘에서 서쪽으로 5m 떨어진 지점에서 최근에 후손(김병학)에 의해 발견됐다.
이 고비는 인천 지역에서 유일하게 600여 년 간 원형이 잘 보존된 지방호족의 묘갈로 추정되고 있다. 묘비에는 "고려봉익대부삼사좌윤 김안정지묘", "부인보성오씨부"라고 비문이 음각되어 있으며, 묘 동쪽에는 문인석 1기가 있고 남쪽 좌우로 망주석 2기가 세워져 있고 묘 앞에는 혼유석과 상석이 있다.
공은 고려시대 봉인대부(문산계/분방의 하나로 종 2품의 재상반열 관계로서 중요한 요직)로 품계를 받고 실직으로 삼사(三司:국가의 전곡의 출납과 회계 관장기구)의 좌윤(左尹:당시 중서문하성, 중추원과 함께 재상관 서장)을 역임했는데 이때가 고려 공민왕조였다.
사후에 수손인 한죽헌(寒竹軒) 김자량(金子良)의 업적으로 공에게는 '이조판서 겸 홍문관제학'이 증직되었고 부인에게도 '정부인보성오씨'의 봉작이 내려졌다.
묘역에는 구비와 신비가 있는데 신비는 구비가 오래되어 정조 10년(1786)에 다시 세우고, 구비는 묘역 옆에 묻혀있던 것을 최근에 발견한 것이다. 묘갈명에 묘역이 있는 곳을 "김포군 남노장면 고산 뒤의 좌좌언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비는 1634년, 공의 7대손 정헌공 수현(壽賢)이 종친들과 세웠다고 전한다. 현재 이곳 묘역에는 김안정묘와 5기의 묘가 남아있지만, 원당동 신도시 개발 전까지만 해도 약 100기의 풍산김씨 묘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묘역 하단에는 공의 아들인 한죽헌 김자량공의 묘가 위치해 있는데 공은 고려 공민왕 원년에 태어나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에게서 수학하여 사마시에 급제하고 이듬해에는 문과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시중이 이르렀고 조선건국 후에는 한성부판윤, 예조판서겸지경연예문관대제학,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함길도 관찰사, 호조판서겸시복시부제조,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이 밖에도 군기시직장을 지낸 김종수(金從水)의 자이고 김안정 공의 손자인 계화당 인손(桂化黨 麟孫) 공은 홍문관교리를 시작으로 동지의금부사, 대사간, 평안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현손인 수봉(壽鳳) 공도 장예원사의를 거쳐 보은, 회인 현감을 지내고 관직에서 물러나 지금의 서구 원당동에 정착 후 이곳에 묻혔다.
김안정 묘역 일대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2002년 청동기 시대의 수혈지와 수혈이 발굴, 조사되어 잠정적으로 문화재 보존구역으로 조치되었고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인근에 위치한 검단선사박물관에 2008년부터 보관, 전시를 해오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지역의 의미 있는 유물과 유적이 있는 원당동 지역은 우리들에게 귀중하고 자랑스러운 곳이기에 향토역사를 바로 알고 지역 정체성 함양의 장소로서 한 번쯤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개해 본다.
박한준 (인천서구문화원 원장)
자료 : Green 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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