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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2탄, 청송심씨 가옥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2탄, 청송심씨 가옥


280-3번지에 앉은 청송 심씨의 이 구옥은 3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인천 최고령(最高齡)의집이다. 이 집은 조선초영의정을지낸청송심씨(沈氏) 참정공파(僉正公派) 안효공(安孝公) 온(溫)의 10대손,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증가선대부이조참판(贈嘉善大夫吏曹參判) 한웅(漢雄1652~1715)이거주하기시작하였다고한다.



1940년에한웅의8대손상필(相弼1873~1957)과그의 아들 운섭(雲燮1899~1966)이 4년간에 걸쳐 증축 공사를 하면서, 백두산에서 한국송(韓國松)을 벌채해압록강을뗏목으로해서신의주까지가져와 인천으로 운반해 왔고, 지붕의 기와는 영흥도에 있었던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사당이 오랜 풍상으로 퇴락하여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 배 3척을 내어 그 기와를 가져다가 얹었다는 것이다. 6·25 당시 인천 시민 수 만 명이 개건너나루를 건너 피난해 왔을 때, 이 집에 무려 30여 가구가 들어와 생활했는데 신기하게도 우물이 마르지 않아 피난민들의 극심한 식수난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우물은현재도보존이되어있다.


  


그 후 1950년대에는 길영희(吉英羲) 교장 선생의 주도로 인중·제고생은 물론 서울고, 인일여고, 송도고 학생들의 특별활동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969년 10월 정부가 농어촌 전기 공급 공사를 추진 할 때, 서곶지역전기공사추진위원회위원장이었던 현재이집의주인심재갑씨가김정렴(金正濂) 당시 상공장관을 이 집에 초청하여 회의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근래이 구옥이 경인고속도로 직선화 사업의여파로 헐리게 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들렸었는데 그 후 어떻게 되고 있는 지 불확실하다. 그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데,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집이그냥 사라진다는 것은 천만부당하다. 아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글/시인 김윤식


자료 : Green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