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인천 서구 풍경 49탄! <심덕기 선생>
서구 인물로는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선생을 이난(欄) 시작 무렵에 조명했을 뿐, 서구의 인물에 대해서는 산발적으로 인용하는 정도로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 까닭에 시대적으로 가까운 근현대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몇 분만을 만나 보려 한다. 전근대 인물은 워낙 출중한 분들이 많으셔서 게재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서구 지역 인사로서 각 분야에 걸쳐 거명할 분들이 여러 분이 계시나, 우선 인천시 공직에서 크게 활약하셨던 심덕기(沈德基 1911~1992) 선생부터 순서를 잡는다.
“풍산 심씨로 호는 우봉(牛峯)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경성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금촌 금융조합에 근무하면서 일제의 수탈 만행으로부터 민족 자본을 지키기 위하여 고심 노력하면서 8·15광복을 맞았다. 1951년 대한민국 최초로 실시된 지방자치 선거에서 초대 인천시 민선시의원에 당선되었다. 1954년 제2대에도 재선되어 인천시의회 의장에 피선되어 농업과 공업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정책을 펴는 데 주력했다. 1957년 인천교(仁川橋) 건설을 추진해 인천의 동서 지역 균형 발전을 꾀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1970년 인천 서구 검암동의 사유지 3만여 평을 쾌척하여 영화중학교를 건립토록 했으며, 육영재단 선진학원 이사장, 정하학원 이사로 있으면서 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묘는 김포시 양촌면 유현리 선영에 있다.”
이상이 서구사(西區史)에 보이는 선생에 대한 기록이다. 간략하게 요약이 되어 있지만 선생께서 서민 생활을 보살피고 시의 발전을 위해 애쓰신 점, 그리고 후세들을 위해 부족한 교육 시설이나 자본을 자비로 충당해 벌였던 육영사업에 크게 공을 세우신 점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훗날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밝히려니와 당시 ‘인하공대’ 발전을 위해 미군 등, 요로에 건의했던 노력도 선생의 뜨거운 후세 교육열의 증거라고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선생의 이력으로, 서구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자유당 당무회의에서 경기도당 부위원장에 심덕기, 김정순양씨를 인준하였다.”는 1958년 8월 17일자 경향신문 기사도 보인다.
선생이 정치가로서 인천에서 주요 역할을 하셨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반드시 선각자적인 인물이 태어나는데 선생도 서구지역의 그런 인물의 한 분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바로 이런 선대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Green서구 228호
김윤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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