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인천 서구 풍경 47탄! <제물포고등학생들과 소달구지>
두 달을 쉰 '사진 속의 서구' 코너를 다시 계속한다. 50회 정도에서 끝을 내면 맺음이 반듯해서 독자들도 그러려니 할 텐데 마흔여섯 번째에서 멈추니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공교롭게도 금년 12월이면 50회로 똑 떨어지게 된다. 또 한편, 대부분 사라진 거리, 건물 위주의 과거 사진만 다루지 말고 근래의 훤하고 밝은 서구 모습도 연재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주문도 있는 터여서 그런 면도 고려를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붓을 든다.
사진은 1960년대 초 가좌동 풍경이다. 풍경이라기보다 '풍물'. '풍습’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듯하다. 이 사진은 서구의 큰 어른 심재갑(沈載甲) 선생님께서 보관해 오신 것이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이미 본란에서 두세 차례 소개 말씀을 올렸기 때문에 더 부언은 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볼 수 없는 이런 옛 시절 빛바랜 사진이나마 고이 간직해 오신 선생님께 큰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
이 사진 역시 서구문화원에서 편찬한 서구 그리고 사람들』에 실려 있다. 해서 거기 나와 있는 사진 설명을 그대로 옮겨 본다.
“당시 제물포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좌동 건지골에서 하계 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이다. 우마차를 끄는 이는 손흥수님이며 우측 산은 현재는 없어진 해망재이고 좌측 산이었던 자리에는 현재 가좌시장이 들어섰다. 이 일대 밭은 현재 한신휴아파트, 현대아파트 등의 주거 밀집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토박이가 아닌 분들은 건지골 같은 지명을 모를 것 같아 부연 설명을 드린다. 건지골은 원래 가좌동 지역의 건지(乾池) 마을을 이르는 지명이었는데 '가재'와 연관되어 가좌리, 가좌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곳에 가재가 많이 사는 건지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큰 가재 한 마리가 건지에서 나와 하면서 '가재울'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가재리(佳㘽里)’라 하였고, 이후 '가재'가 변응되어 '가좌'(佳佐)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곳을 건지가 있던 곳이라 하여 ‘건지골’로도 불리었다.”는 것이 <인천시사>의 설명이다.
아무튼 이 사진 역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보여준다. 불과 반세기 만에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 가늠조차 할 수 없이 변해 버리고 만 것이다. 사라진 논밭의 쟁기질 자국, 다시 볼 수 없는 학생들의 교모, 두루 한 가지였던 여름 하복, 그리고 멍에를 쓰고 길마를 얹은 채 힘들게 수레를 끄는 황소!
덧붙여, 인용한 사진 설명의 '우마차'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를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우차(牛車)' 혹은 '소달구지'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임을 밝힌다. 요즘은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 단어여서 이런 오류가 생긴 듯하다.
Green서구 제226호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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