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21탄, '경명현(景明現)을 찾아서'
응방(鷹坊) 소재지였던 서구 공촌동 산 163번지 '징맹이 고개'
오늘날 지역에 남아 전해지는 고유지명의 유래에는 향토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요즈음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신도시 등에 새로이 부여된 지명들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은 있지만 그러한 향토애를 느낄 수 있는 명칭은 거의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지역의 많은 원로들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올바른 전승을 주도해 온 산증인들이며 지역이 역사와 문화는 지역과 주민의 정체성이자 자긍심으로 우리 고장을 사랑하고 지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역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들은 전하고 기록으로 남겨 지속적으로 전승하는 것 또한 현대문화의 보급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예로부터 서구와 계양구, 부평구를 이전의 교통의 요지로서 많은 얘깃거리를 갖고 있는 서구 공촌동 지역의 '경명현'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발과 문명의 편리로 인해 오랫동안 끊겨 있던 것이 최근 생태통로 공사로 복구돼 동물들의 이동통로 역할을 하게 된 이곳 '경명현'(징매이, 징맹이, 질맹이, 경명이고개, 경매이고개, 수주고개, 천명고개)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부평조' 에는 '경명원 서십리 석곶로(景明院 西十里 石串路)'로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래로 개경(송도), 인천, 안산 등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서해안을 방어하던 곳이기도 했다.
고려 충렬왕 원년(1274년)에는 이곳 공촌동 '경명현' 일원에 매사육(매방)과 매산냥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인 응방(鷹坊)을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이곳으로 이전, 설치하고 친히 다섯 차례나 방문하여 매사냥을 즐겼다고 전한다. 충렬왕은 어린 시절 원나라에서 매사냥을 배웠고 왕이 된 후 '경명현' 일대에서 매사냥을 한 것도 매방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당시 부평의 지명도 계약에서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시키고 죽으면 이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매사냥을 즐겼다고 문헌에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 매사냥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지속적인 사냥매 요구로 인해 매방에서 사육된 매를 징발했다고 '고려사'에 기록하고 있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매 사냥터와 더불어 매를 사육하던 매방(응방)이 있었던 곳은 '경명현(징맹이고개)' 서쪽 약 50m 지점에 매방이 있었던 흔적을 확인했다고 전한다.
충렬왕 원년에 설치된 국영매방(응방)은 충목왕 1년(1345)에 폐지될 때까지 70여 년간 존속되었고 조선 태종때 양녕대군도 '경명현'을 찾아 매사냥을 했었던 기록도 전해지는데, 매사냥은 고대부터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 사냥법으로 주로 임금이나 귀족층이 즐겨왔으며 매사냥에는 우리나라의 해동청(海東靑, 송골매)을 최고로 쳤다고 전해진다.
'경명현'은 공촌동에 속했으며 옛 지명은 고현리(古縣里)로 불려왔고 옛 문헌에는 '경명현폐현지 계양산 북록만일사하평탄지 민호이백야'(景明峴廢縣地桂陽山北麓萬日寺下平坦地民戶二白也:당시 경명현의 옛 현 소재지는 계양산 북측의 만일사 아래 평탄한 땅에 있었으며 200호의 백성이 살았다)라고 기록하고 '계양사(桂陽史)'에도 고대 계양지 역의 읍소재지로서 계양산 서쪽 고현평(古縣平)로 추정하고 있다. '경명현'은 매사냥과 응방의 소재지였을 뿐 아니라 산이 깊고 험해서 도적 떼도 많았다고 하며 일설에는 임꺽정의 활동 무대로도 전해진다. 이 밖에도 병인양요(고종3년 : 1866)와 신미양요 직후 부평부사 박희방(朴熙方)이 이곳에 동서(東西)로 '중심산성'을 쌓고 축성의 내용을 사적비에 기록하였었고 서해안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이렇듯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온 '경명현'의 고려 국영매방의 흔적은 사라진 반면, 우리나라의 정통 매사냥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기록에 의해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지난 2010년에 드디어 문화재청, 유네스코 한국위원 등 유관기관들의 부단한 노력과 우리 매사냥의 유구한 역사와 독창성을 오래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아랍에미리트와 프랑스, 스페인, 몽골 등 매사냥 선진국들의 공조로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한국이 일본, 중국 등을 제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매사냥 메카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증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서구 공촌동에 이렇듯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려시대 매 사냥터와 매방(응방)이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문헌을 살펴 다시 기록해 본다.
인천서구문화원 원장 박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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