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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서구, 만나고 싶은 서구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14탄, 한들방죽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14탄, 한들방죽


백석(白石)은 마을의 행정 지명으로 '흰 돌'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한돌, 한둘, 한들 등으로 불린다. 흰 돌은 마을의 뒷산인 한뫼산에 흰 돌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재래 지명 '한돌'의 해석 오류라고도 볼 수 있다. 이곳의 한들부락은 검단으로 가는 서곶로 국도를 타고 달리면 왼쪽에 보이는 마을인데 커다란 무논 지대를 끼고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원로들은 '한들'또는 '한둘'이라고 하지만 '흰 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넓은 벌판을 가로지르는 큰 둑을 '한들방죽'이라고 일컫는다.


1961년 정부는 한자식 표기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순 우리말 지명에 대한 일제 조사를 하고 이를 관보로 공시한 바 있다. 이것은 매우 충실한 성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자료에도 '한들'로 되어 있다. 당시의 마을 원로들이 그렇게 증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부평부가 관할 동리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 백석리가 아니

라 '한들'을 훈차(訓借)한 '대야리(大野里)'로 정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백석의 지명이 생기고 이미 백 년이 지났으니 어원이 어떻든 백석동인 것은 분명하다.


2004년에 발간된 '서구사(西區史)'의 내용이다. 이것을 보아서는 백석동이라는 동명이 잘못 붙여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제가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 같은 오류를 저지른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틀림없이 백석도 그런 식으로 잘못 표기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곳은 1914년 부천군 서곶면 관할 백석리였다가 1940년 4월 1일 인천부에 편입될 때 일본식 지명인 운요오쪼(雲揚町)가 되기도 한다. 이 지명은 고종 13년(1875)에 강화도에 침입해 무력으로써 끝내 강화도조약을 체결케 한 운요호사건의 군함 명칭에서 유래한다. 일제는 전국의 지명을 자기들 식으로 바꾸면서 청일, 러일전쟁에서 싸운 군함 이름을 많이 붙였는데 백석리에 운요오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같은 역사를 간직한 한들방죽 일대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야금야금 모습을 잃어간다. 아래 사진은 2004년에 촬영한 것이고 위의 사진은 그보다 더 전의 사진이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서구의 옛 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김윤식/시인

자료 : Green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