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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인천 서구 풍경 38탄! <1973년 객토 작업>





사진으로 보는 인천 서구 풍경 38탄!  <1973년  객토 작업>




인천광역시 옛 사진첩 속에 들어 있는 사진이다. 사진 제목이 업’이라고 되어 있다. 직접 작업하는 광경은 놓치고 이렇게 객토가 끝난 논이나마 찍어서 농정(農政) 시행의 증거로 두려 했던 모양이다. 1973년도의 일인데, 객토는 농작물의 수확이 완전히 끝난 뒤에 하니까 아마도 그해 겨울 풍경이 아닌가 싶다.





1973년이면 미곡 증산이 최대 과제의 하나였을 때였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쌀을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행정 당국이 객토다  뭐다 직접 나서 온 정력을 쏟을 때였으니 이런 무뚝뚝한 제목 밑에 논바닥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일은 당연했으리라.   


이 사진은 서구문화원에서 펴낸 서구 그리고 사람들』이라는 사진집에도 실려 있다. 인천시와 달리 이 사진집에는 “농지 객토 작업을 해 놓은 검암동 마을(빈정네 뜰)이 보이며 뒤편으로 허암산이 보인다. 당시 논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황토와 퇴비를 뿌리는 객토 작업을 실시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지역 토박이 박한준 서구문화원 원장의 성의일 것이다.아무래도 오늘날 이 사진을 읽는 시선(視線)은 두 가지일 듯싶다. 나이가 연만한 층은 이……!” 하며 감회에 젖어 오래 오래 사진을 들여다볼 것 같고, 젊은 층은 리짝 사진을 다……. 하며 덮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요즘 아이들은 벼를 다고 하지 않던가. 글을 쓰는 사람도 전자(前者)에 가까워 필경 감회 에 젖는다. 사진 속 마을이 꼭 나고 자란 마을이어서가 아니라 그 만큼 논밭의 정서가 골수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 먼 것도 아닌, 40년 전 시절에는 사실 인천 어디에서든지 오히려 바다보다 논밭을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또 그때는 누구나가 다 말 그대로 오로지 자식’으로 살았던 까닭이다. 한두 채 기와집이 끼어 있기는 해도 고만고만한 키로 모여 선 정감(情感)어린 초가집들, 그리고 탁 트인 마을 앞 무논들! 날씨가 추워서인지 뛰노는 개구쟁이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풍경 자체가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돌게 한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등을 기대고 하늘이 내리는 대로, 땅이 주는 대로, 참 겸손하고 순하게 오순도순 살아가던 옛 마을이여, 옛 시절이여!논 한가운데 패인 두 줄 긴 소달구지 바퀴 자국은 틀림없이 객토용 생겼을 것이다. 소를 끌던 그때의 사람도 달구지도 모두 사진 밖으로 나가 사라지고 없다. 우리의 옛날은 이렇게 세상 밖으로 속절없이 사라지고 만다.



Green서구 제215호

김윤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