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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34탄! <연희동 샛말(간촌) 모습>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34탄! <연희동 샛말(간촌) 모습>



  이 사진 역시 서구문화원에서 발간한 『인천 서구 그리고 사람들』이란 사진집에서 얻은 것이다.


  현재 인천부평향교 전교(典校)로 계시는 정인표(鄭寅杓) 선생께서 제공하신 사진이다. 단정한 이 초가집은 정 전교께서 태어나신 연희동 샛말의 고가였다. 사진은 1940년대 풍경으로 1960년대 들어와서 기와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 지역 일대에는 초계 정씨 문중이 18대에 걸쳐 세거(世居)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여름 『서구사(西區史)』 편찬을 위해 정전교님을 두어 차례 뵈었는데, 이곳에 당신 조상이 세거하게 된 연유를 말씀하시면서 덧붙여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물론 그 이야기는 전교님께서도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들으셨다는 일종의 민담류(民談類) 같은 내용이다.


  옛날 원 서곶에는 정씨, 송씨, 그리고, 류씨 문중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이 세 문중의 최초 거주자라고 할 수 있는, 그 맨 처음 세 분이 하루는 계양산 꼭대기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각자 살아갈 터전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


  우선 류씨는‘ 버들’이니까 시천동(始川洞)에 살고, 송씨는‘ 송사리’이니까 물(바다)이 가까운 경서동(景西洞)에 자리잡고, 정씨는‘ 당나귀’이니 풀밭이 많은 검암동(黔岩洞) 일부와 연희동(連喜洞)에 거주지를 정해 살아왔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한낱 소담(笑談)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지만, 이 내용으로 미루어 시천동에만은 옛날부터 시내가 흐르고 버드나무가 많았던 듯하다. 나머지 두 이야기는 실제와 맞지 않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씨의 경우는 세간에서 흔히‘ 나라 이름 정(鄭)’ 자를‘ 당나귀 정’이라고 하기 때문에 갖다 붙인 억지 이야기일 것이다. 송씨의 경우 역시도‘ 송(宋)’이란 성씨 본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짐작컨대 발음 연상(聯想) 때문에 이런 농담 같은 이야기가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미리 양해를 구하거니와 이 글은 그저전해 오던 민담류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이니까 혹송씨, 정씨 문중에서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


  아무튼 정 전교님의 이 초가는 지난 시대 전형적인 우리나라 농가의 모습이어서 불현듯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이태마다인지, 아니면 더 오래 지나서인지, 낡은 초가를 벗기고 새로 이엉을 엮을 때면 썩은 짚 속에서 굼벵이 같은 것이 나오고는 했었던 생각이 난다. 초가는 당시 인천의 도심 한복판인 중구 내동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지붕이 말끔히 없어진 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이다.



Green서구 2011호

김윤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