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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28탄! <경서동 공동우물>





사진으로 보는 서구 풍경 28탄! <경서동 공동우물>



  1970년대라고 표시된 이 사진도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은 이런 시골 들판도, 이런 우물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 철이 지났지만 김장철이면 물지게를 지고 몇 차례씩 우물물을 길어 나르던 생각이 난다. 1950년대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물지게를 졌는데 정말이지 김장철에는 어깻죽지에 못이 박이도록,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물을 길었다.


  내가 살던 곳은 이런 공동 우물이 없이 대부분 좀 산다는 집에나 우물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주인 댁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물을 길었다. 당시 마당에 식수용 우물을 파는 일은 대단한 역사(役事)였던 데다 자금도 많이 들어 영세한 가정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펌프라도 설치한 집은 더욱 부자라고 할 수 있었다.






"새마을 운동 일환으로 시작된 마을 공동우물(대동우물) 정비를 통해 주위를 시멘트로 바르고 뚜껑을 만들어 우물(식수)을 깨끗하게 관리했다. 당시 경서동 우물에서 주민들이 빨래하는 모습으로 옆의 입간판에 '부탁의 말씀'이란 유의 사항이 보인다. 우물 너머로 겨울철 농한기에 동네 분들이 활을 쏘던 과녁판(경서동 허정 님 밭)이 보이고 우측의 집은 경서동 심은기 님의 생가 모습이며 마을 앞에는 가정동 원적산(꾸 철마산)이 보인다."


  서구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인천 서구 그리고 사람들> 사진집에 나와 있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경서동 공동우물은 식수 용이 아니라 빨래용이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공동 빨래터인 셈이다. 보기에도 식수 물통 같은 것은 없고 아낙네들이 빨래하는 모습만 보인다. 보통 식수용 우물에서는 절대 빨래가 금지되어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입간판에 쓰인 글귀로 돋보기로 확인해 보니 제목인 "부탁의 말씀" 아래 이렇게 쓰여 있다.


"1. 이곳은 우리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새마을 공동 빨래터입니다. 2. 서로서로 아끼고 깨끗이 사용하여 문화인의 긍지를 지킵시다."


  그러니까 이 우물은 애초부터 빨래터로 쓰기 위해 만들었거나 정비를 한 것이 분명하다. 주변이 논밭인 것으로 보아 식수일 수는 없는 일이다. 농터에는 비료나 농약 같은 것을 뿌리게 되는데, 그래 가지고 마실 수는 없을 터이니 말이다. 대동우물이란 말은 마을 전체가 식수로 쓰는 우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역시 이 우물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여기 와서 물을 져 나르려면 그야말로 어깨, 허리, 죄 못쓰게 될 것이다.




/Green 서구 제 205호

김윤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