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 계양부사로 재직한 이규보 다양한 문집을 전해준다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조선의 해안방어진지인 연희진을 알고 계시나요?
인천 서구의 또 다른 유적지를 찾아 나섭니다.
인천의 경명대로는 백제시대부터 소금을 운송하는 주된 통로이자 국방의 요새였습니다.
예전엔 서구의 대부분은 아마도 바닷물이 오가는 해안지역으로
하나씩 매립이 되면서 오늘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고려 때 계양부사로 온 이규보가 계양산에 올라
삼면이 바다로 되있다고 표현했으니 말입니다.
서구 연희동에 위치한 연희진(延喜鎭)을 찾아
진의 설치 배경과 폐쇄를 해야했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려 합니다.
사실 외세의 해안상륙을 저지할 수 있는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부평해안에 설치된 포대들과 이를 관할하는 임무를 갖은 곳이 바로 연희진(延喜鎭)입니다.
1876년 고종이 인천과 부평의 해안 방어를 위해 연안에 포대를 쌓게 됩니다.
지금의 화도진과 연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만큼 이곳은 외세의 침략이 빈번하였고 중요한 국방의 요새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 1789년에 해안 포대 진지가 완공되었으나
불과 1년 후인 1880년 인천의 개항이 이루어지자 연희진은 폐쇄됩니다.
이후 부평지역의 해안 방어 체제를 정비하면서
계양산 경명현(징매이고개)에 중심성을 쌓고
기연해방영이란 부대를 설치하며 연희진의 포대와 그 기능까지 흡수 통합시켰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찾아간 곳은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곳은 이미 계명공원이라는 공원으로 바뀌었고
주변을 돌다보니 잠시 그당시의 흔적을 남긴 비석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100년전만해도 이곳은 바로 해안가가 있었던
조선의 중요한 해안진지였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계명공원의 이름을 연희진공원이라고 바꾸면 안될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역사의 흔적을 후세에게 알린다는 점에서도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공원 이름보다
중요한 조선 말기의 해안진지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당시의 시대상황을 전해주는 스토리가 있는 공원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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