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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feat. 블로그기자단

허암산 깊숙한 곳, 허암 정희량 유허지를 찾아떠나볼까요?



허암산 깊숙한 곳, 허암 정희량 유허지를 찾아떠나볼까요?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

그는 누구였을까요???

옛 성현들이 부평도호부의 아름다운 팔경을 읊었던 글을 알고나서부터 가장 궁금해한 인물이었습니다.

얼마나 그곳이 멋진 곳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

먼저 부평팔경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의 한 구절을 담아 봅니다.


虛庵冷井

허암산의 찬우물로 "허암이 차(茶)를 다려 마셧다는 찬우물'을 뜻합니다.


부평도호부의 제 1경이 바로 허암냉정(虛庵冷井)이라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허암 정희량에 대해 궁금하게 되었고

결국 발걸음은 그의 유허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허암산'은 검암동 소재의 산으로, 조선조 연산군 때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1469~?)이 은둔한 곳입니다.

그가 허암산에 머물 때 자신의 처지를 아래와 같이 읊었다고 하는데요.



日暮滄江山 해는 저물어 강위에 푸른데

天寒水自波 날씨 차니 물결도 스스로 일더라

孤舟宜早泊 외로운 배는 일찍이 매어 놓았는데

風浪初應多 풍랑은 밤을 타서 더욱 많이 일더라




  




네비를 쳐도 나오지 않는 허암산.

그런데 바로 허암산이 '함허봉'으로도 부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구청에서 이런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인 산의 명명을

정확히 '허암산'으로 바꾸었으면 하고 소망해봅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아주 외딴 조그만 야산입니다.

주변은 온통 바다였을 것이고 오직 계양산으로 가는 조그만 곳

바로 허암산의 본모습이 아니었을까요?









허암 정희량은 폭군 연산군에게 경연에 충실할 것과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일 것을 상소하여 왕의 미움을 샀다가 유배되었습니다.

 

이후 갑자년에 큰 사화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였고

이곳에 수년간 은거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시문에 능하고 차(茶)와 약(藥)에 조예가 깊었고

음양학인 주역에 꽤나 밝았다고 합니다. 









특히, 신선로(神仙爐)라는 음식을 아시겠지요??

바로 허암이 "세속을 떠나 산중에 은거할 때 화통에다 여러가지를 끓여 먹었다고"하여

신선로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 허암산을 잠깐 올라가면 그의 유허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신록으로 그려진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허암정이란 정자가 있고요.

부평일경으로 그렸던 우물도 아름다움과는 왠지 멀게 느껴지듯

자리만 잡고 있었습니다.






  


  


  


  







허암정에서 쉬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벌들이 많고 지저분하니 쉴 수가 없었습니다.

구청에서 좀 더 깨끗한 관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부탁해봅니다.


아무튼 부평제1경으로 허암냉천이

그려진 그곳을 찾았다는 자체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