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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향토역사순례

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13탄, 양혜공 한백륜 묘역을 찾아서 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13탄, 양혜공 한백륜 묘역을 찾아서 검단사거리에서 검단초등학교로 넘어가는 원고개를 지나 방아재고개 오른편에 '청주 한씨 묘역'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도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조용하던 농촌마을이 사방으로 길이 뚫리고 정감어린 옛 지명들이 사라져 버렸다. 이곳에는 특히 옛 논을 지칭하는 이름들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도 이곳 지명을 원로들은 '논모루'라고 부른다. 한백륜 묘가 있는 이곳은 능안, 능내라는 전래지명이있다. '문화재유적총람'에는 고분 2기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위치를 알 수 없고 이곳의 지명에 '강릉고개','강령고개','강정고개'라고 전해지는 곳은 논모루에서 여래 방향으로 황새 모퉁이 쪽으로 난 고개를 말하며 이 마을에 강릉이라는 능이 있어 붙.. 더보기
인천시 서구 향토역사순례 8탄, 중심성지를 찾아서 인천시 서구 향토역사순례 8탄, 중심성지를 찾아서 중심성(衆心城)은 서구와 계양구 경계를 이루는 경명현(서구 공촌동 산1번지 일원)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일자(一字)형태의 산성이었다. 인천 앞바다에서의 병인∙신미양요(1866)와 운양호사건(고종12년:1875)으로 제물포 개항을 앞둔 당시, 고종16년(1979)에 서해방어를 위한 화도진과 연희진이 설치되었다. 이는 조선의 문호 개방과 함께 국방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특히 서해의 방비는 인천항과 강화수로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제물포가 개항하게 되는 임오군란 직후(1882)에 화도진과 연희진은 폐쇄되고 후속 방비책으로 고종20년(1883)에 당시 서곶에서 계산동으로 넘어가는 경명현(징맹이고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