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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25탄, 사라진 보호수 가좌동 음나무(엄나무)




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25탄, 사라진 보호수 가좌동 음나무(엄나무)



  옛날에는 마을에 그 마을의 역사와 함께 생장을 같이 한 고목(보호수)이 마을의 입구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마을의 역사이며 문화였다. 특히 서구의 고유지명이 남아있는 집성촌에 위치하는 보호수의 향토사적 정체성은 깊은 연원이 있다.


  보호수가 서 있던 공간은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고, 삶에 지친 심신의 휴식, 개인의 간절한 마음을 기원하고, 마을의 문화를 공유하는 장소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자주 찾고 즐기던 고목들이 자리했던 공간은 점차 줄어들거나 나무가 다른 공간으로 이전되면서 자연스레 마을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그저 오래된 나무로만 남게 되었다.


  또한 현대화된 도시형성은 향토의 정체성, 역사, 문화를 담고 있던 나무들을 보존의 울타리에서 밀어내고 다른 형태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요즈음 향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 나무들에 관심 또한 높아지는 점은 다행이다.


  지난 호에 이어 보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좌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보호수가 수명을 다하고 고사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가좌동은 1600년대 기록에 부평부 석곶면 가좌동(佳佐洞)으로 기록되어 있고, 18010년(순조 10) 부평부사가 확인한 호구단자(戶口單子)에도 같은 지명의 기록이 보인다. 가좌동은 가재울ㆍ건지골ㆍ감중절리의 3개의 리(里)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취락 마을 지명으로 건지골ㆍ웃말(박촌말)ㆍ장끝말ㆍ네집매ㆍ아랫말ㆍ능안말ㆍ살곶이ㆍ쟁아리ㆍ성골ㆍ산우지ㆍ능아곶이ㆍ신진말ㆍ감중절이ㆍ이방뿌리ㆍ모두지ㆍ윗나루터ㆍ아랫나루터 등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동ㆍ남ㆍ북ㆍ 세 지역에 각 한 그루의 음나무(엄나무) 보호수가 있었는데 동쪽에 있던 음나무는 가좌동에서 산곡동 화랑 농장으로 가기 위해 넘었던 구르지 고개 전에 위치한 쟁아리 고개(여우자비고개)에 있었다. 이곳에는 근래까지도 서당신(성황신)을 모시는 동무더기를 볼 수 있었으며 100여 년이 넘어 보이는 나무에 오색천을 걸고 제를 지내던 흔적이 남아 있다.


2007년도 여름에 찍은 가좌동 보호수 전경.


  또 다른 음나무는 수령 300여 년이 넘었던 것으로 현 가재울 사거리(아랫마을) 인근에 위치해, 마을 입구를 듬직하게 지켜 오다가 1960년 경에 수명을 다하고 넘어져 근근이 한 가지가 싹을 띄우며 수명을 유지하다가 1970년대 초에 완전히 고사되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고사된 뒤에도 나무를 치우지 않고 보존 할 정도로 신성시 여겼다. 마을에 초상이 나서 상여가 지날 때에도 이곳을 피해 돌아서 지나갔고 마을 주민들도 평소 이곳을 지날 때는 엄숙한 마음가짐과 수호목에 대한 신성함을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수명을 다해 고사한 나무는 그 후 동네 꼬마들의 불장난으로 검게 타버린 밑동 부분마저 도시화로 인해 그 흔적이 사라졌다. 후대에 들어 아쉬운 마음에 보호수가 있던 자리 앞에 (가좌완춘공원) 뜻있는 분의 노력으로 음나무(엄나무)를 심고 그 전래는 표지판으로 세워 놓았다.


  마지막으로 다른 한 곳은 북쪽 지역(건지골)의 건지사거리에 수령 350여 년의 음나무가 있다. 서달산(徐達山) 아래 자리한 건지골은 15세기 중ㆍ후반에 달성 서씨가 입향하여 형성된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이곳을 마을의 쉼터, 빨래터, 단오날 그네를 매어 타는 장소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가좌동 건지골(건지사거리)의 음나무도 2012년 5월 한 가지에서 가까스로 싹을 튀우다 심한 가뭄으로 고사해 이제 수명을 다하여 가지들은 잘린 채 밑동의 형체만 유지하고 있다. 그 모습이 흉해서일까 능소화를 심어 줄기를 가려놓은 안타까운 모습으로 예전의 아름답던 수형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보호수는 마을의 수호목으로서, 쉼터로서 마을 문화의 장이 열리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음나무(엄마무)는 예로부터 농촌에서 그 가지를 대문 위에 매달아 두어 잡귀를 막고 병마를 예방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음나무는 액막이 역할, 긴요한 약재나 음식에 넣어 사용해온 우리 생활에 밀접한 나무였다. 가좌동의 보호수인 음나무가 지닌 역사와 문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도로 위의 차량은 매연을 풍기며 오늘도 달리고 있다.




/Green서구 제201호

인천서구문화원 원장 박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