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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14탄, 원당동 의령남씨 종중묘역을 찾아서


인천 서구 향토역사순례 14탄, 원당동 의령남씨 종중묘역을 찾아서


인천시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된 '의령남씨 종중묘역'은 서구 원당동 산 82-1 번지, 원당의 가장 높은 산인 옥계봉(야미산, 뱀산, 배미산, 망산, 당산)에서 '송우산'∙'장구산'에 이르는 양지바른 산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한창 번화하게 발전하고 있는 검단의 완정사거리에서 김포시청 방향으로 이어지는 원당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서구영어마을(구 창신 초등학교 자리)이 나오고 그 옆으로 보기에도 울창한 소나무에 둘러쌓여 있는 '의령남씨 종중묘역'이 자리한 산은 몇몇 사서에 '송우산(悚愚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마을 원로의 증언에 의하면 소나무가 많아 '송우산(松隅山)'으로 불리기도 하며 그 연유로 또한 '솔모랭이'라는 소지명도 전한다고 한다. '김포군 지명유래집'에도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이‘송우산’이라는 지명을 소도나 별읍의 변형으로 추정 해놓고 있기도 한데, 소도나 별읍이라 함은 삼한시대에 마을의 입구나 높은 곳에 방울이나 북을 단 긴 막대를(솟대, 짐대) 세워 놓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제를 올리고 기원하던 곳이었다.


의령남씨 문중은 조선조 중기에 발산의 능굴(능골, 능곡)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해 왔고 현재도 인근에 많이 기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이 지역에 전해오는 소지명 중에 '바리미(바리때)'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기거했음을 알 수 있고 그밖에 '능굴','아낙말','샛말'이라는 마을이름들도 전해진다. 이 마을에는 '대장간 모퉁이'라는 지명도 있는데 농경사회의 필수품이었던 농기구를 만들던 대장간이 있던 것과 '조축머리'에는 주막도 있었다하니 마을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또한 마을 동북편의 산을 가마산이라 부르는데 원당마을의 '가마논','가마골'등과 함께 천신제를 지내온 것과 관련된 지명으로 보여진다. 능곡의 윗목구석에는 '태릉(胎陵)'이 있던 곳이라 전하고 마을 입구 동쪽 산의 부리 끝을 '말무덤깨'라고 부르는데, 이는 큰 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마을 이름인 능굴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며 조선조 인조(仁祖)임금의 부왕(父王) 묘역이전과 관련된 명당 전설도 전해져오고 있다.



(사진 : 묘역 전경 / 출처 : Green 서구)



이렇게 유서 깊고 많은 얘깃거리를 지니고 있는 지역에 자리한 의령남씨 종중묘역의 맨 위에는 조선 중종 때 '가선대부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남정화(南挺華, 1543-1615)의 묘비와 홍천현감, 한산군수를 역임하고 말년에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올랐고 사후에 증직되어 '이조판서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

총관'으로 추증 받고 '보사원종 공신1등'에 추훈 된 남정(南瀞, 1586-1648)의 묘갈이 좌우에 망주석, 문인석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랫단에는 남정의 아들인 남두장(南斗長, 1613-1689)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공은 효종1년(1650)에 진사가 되어 전설사별검, 제용감직장, 장악원주부, 장예원사평을 지내고 의령현감, 한성부판관, 온양군수, 종묘서령 등 많은 관직을 거쳐 공조정랑, 한성부서윤을 지내고 광흥창(조선시대의 백관의 녹봉을 관장하던 관청) 수(守)를 역임하고 사후에 증직되어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의 직에 오른 분이다. 특히 공의 묘갈은 '숭록대부영중추부사'를 지낸 영의정 약천 남구만(南九萬)이 찬(撰)하고 썼다. 공의 묘역 역시 중앙에 상석향로석과 좌측에는 묘갈이 그 좌우로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현재 이곳은 시 기념물(제60호)로 지정되어 후손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지만 묘역을 조금 벗어난 인근에는 중소 공장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고 그 주변으로 신도시(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그나마 오랜 세월 꿋꿋하게 묘역 주위에 둘러서 있는 소나무들만이 이 유서 깊은 묘역의 신성함을 더하고 있다.


매월 구정소식지에 게재되는 향토역사순례 코너는 이번 호 -원당동(능곡, 발산)의 지명유래와 향토인물-와 같이 역사서에 의한 고증이기에 다소 딱딱한, 그래서 재미있게 읽히지만은 않겠지만, 잊혀져가는 우리 지역의 향토인물과 지명유래에 대한 기록들을 들추어내어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향토역사와 지역의 훌륭한 선대들에 의해 계승된 업적과 문화유산을 바로 알고, 거기서부터 지역정체성 확립의 시작점을 찾고자 하는데 기고의 의의가 있음을 되새겨본다.


박한준(인천서구문화원장)

자료 : Green 서구